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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ld Little Girl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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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ld Little Girl (4)

    에일린의 발언이 얼마나 큰 파급을 몰고 왔는지는 설명할 것도 없다. 수많은 하녀가 보는 앞에서 엄마, 아빠라 부르는데 놀랄 수밖에.

    하지만 호수 위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퍼져나간 물살은 연안에 그칠 뿐 파도가 되지 못했다. 혼란과 충격은 한순간. 곧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루가 멀다고 몸을 섞는 것도 모자라 정액을 질질 흘리며 복도를 돌아다닌지라, 하녀들이 보기에 ‘개연성 없는’ 전개는 아니었다. 내가 저택에 발을 들이기 전에도 이랬다는 걸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사생아 정도로 생각하려나. 그게 아니라면 유모가 대신 키워준 아이? 후자라면 절반은 맞는 이야기였지만, 뭐가 됐든 그들이 생각하는 진실과는 멀었다. 눈앞의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미성숙한 영혼이라고 누가 생각할까.

    에일린은.

    특유의 당찬 성격과 똘똘한 머리 덕에 분위기에 금방 적응했다. 태어나길 카르드라실에서 지냈다고 했는데, 성격이 밝은 건 그 덕분인 것 같았다. 천연의 보고는 아이의 훌륭한 놀이터가 되었다.

    나는 그 사실에 감사했다. 처음부터 세상에 던져진다면, 인간에게 실망할지도 몰랐다. 이 세상은 그리 밝지 않다. 차라리 엘프와 보내는 게 나았다.

    순수함…. 앞으로도 그러길 바랐지만, 이미 에일린은 알을 깨고 하늘을 향해 날갯짓했다. 그렇다면, 아이가 날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게 부모의 도리이지 않겠는가. 새장 속에서 좋은 것만 듣고 보기를 바라는 건 옳지 않았다.

    다만 에일린의 처참한 교육 상태는 의도치 않은 것이었다.

    절대로.

    “자, 따라 하세요. 뽀뽀는 목조르기가 아니다.”

    “뽀뽀는 목조르기가 아니다!”

    “혀 집어넣는 것도 아니에요. 그건 키… 흠. 됐어요. 다음으로 넘어갈게요.”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는 게 이런 말일까. 에일린의 충격 발언에 혼절 직전까지 간 알펜리스는, 에일린을 반강제로 끌고 가 재사회화 교육을 했다.

    “아가씨도 따라 하세요!”

    “…뽀뽀는 목조르기가 아니다.”

    …나도 함께.

    “…저기, 파니?”

    “네, 말씀하세요.”

    “왜 저도 같이 받는 거죠…?”

    옆을 바라보면, 내게 딱 붙어 싱글벙글 웃는 에일린이 보였다. 에일린은 나와 함께 있는 게 마냥 행복한 듯 보였다. 나는 가슴에 머리를 비비는 에일린을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알펜리스는 나와 에일린을 향해 하아, 하고 한숨 쉬었다.

    “작은 아가씨가 뭘 보고 배웠겠어요?”

    “….”

    “무례한 말 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저도 포기 못 해요! 아가씨가 멀쩡한 상식을 가져야, 작은 아가씨가 따라 배운다구요!”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찌른다.

    상식이 부족하단 말은 살짝 억울하기도 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정한단 말이다. 냄새를 맡아도 가버리고, 스치면 조수를 뿜으며 헐떡인다. 참아보겠다고 결심을 해도, 나는 어쩔 수 없는 암컷의 몸뚱어리였다.

    나는 알펜리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치만… 슈리엘이랑 가까이 있기만 해도 몸이 저절로…”

    “도련님도 문제에요!”

    “….

    “하아….”

    그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러대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해고 안 당한 사용인이 저밖에 없는 거 알죠?”

    레칸테의 사용인들은 나와 슈리엘을 위해 일하고 있지만, 모두 아이를 가지거나 루셸리니 시민권을 포기했다. 섹스에 거부감을 가진 알펜리스만이 루셸리니에 시녀로서 멀쩡히 일하고 있다.

    옆에서 난폭하기 그지없는 교미를 여러 차례 봐와서 그런지, 섹스촌이 다 된 레칸테에서 유일하게 순결을 지켰다.

    그녀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에일린을 보며 말했다.

    “맘 같아선 도련님도 같이 훈계하고 싶지만… 제가 겁이 많아서 그러진 못하겠네요.”

    “…미안해요.”

    “미안하시면 제발 좀 말해주세요. 애 앞에선 자제 좀 해달라고.”

    슈리엘은.

    영지에 찾아온 상단을 맞이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유랑 상단 청련단. 에일린을 이곳까지 데려다준 사내들. 딸이 외간 남자와 붙어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지만,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뇌가 썩어서 그런지 불온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빠 바빠요?”

    에일린은 그 사실이 내심 서운한 모양이었다.

    “…얼마 안 걸릴 거야.”

    이곳이나 지구나.

    딸 팽개치고 일하러 가는 아빠는 늘 원망의 대상이었다.

    “파니.”

    나는 에일린을 안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어딜 갈 생각이냐고 따가운 눈초리가 날아왔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말했다.

    “그래도… 애아빠는 만나야 되지 않겠어요? 여기 오기까지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빡빡하게 교육하는 것도 좋지 않아보이구….”

    올바른 지식이야 차차 알려주면 된다. 내 옆에서 ‘올바른 지식’을 배울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나는 아빠를 만나지 못해 아쉬워하는 에일린을 지나칠 수 없었다.

    또한 거부하지 못할 걸 알기에 뱉은 말이기도 했다. 그녀는 내 전속 시녀. 부조리한 명령이 아니라면 따라야 했다.

    “….”

    ―탁.

    펜을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그녀는 입술을 우물거리더니, 힘없는 어조로 말했다.

    “…가보세요. 전 청소 좀 하고 있을 테니까요.”

    나는 알펜리스에게 감사를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에일린의 표정이 밝아진다. 나는 에일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섰다.

    “엄마, 엄마! 잠깐만요!”

    에일린은 나를 멈춰 세우더니, 근처 상자에서 기다란 마법 스태프와 샛노란 사과 몇 개를 가져왔다. 이곳에 올 때 가져온 개인 물품이었다. 상당히 좋아 보이는 물건. 나는 스태프와 사과를 받아들며 질문했다

    “…아저씨들이 준 거야?”

    청련단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준 거냐고.

    “아뇨아뇨!”

    에일린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세계수 아줌마가 준 거에요! 엄마 다 가져도 돼요!”

    세계수.

    그 말에 스태프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이거 심재잖아?’

    세계수가 몸을 깎아서 지팡이를 만들었다고? 그럼 이 사과는? 눈을 크게 뜬다. 마력과였다.

    세상에 풀리는 순간 혼란을 초래할 오버스펙 아이템. 마나 증폭량이 상상을 초월했다. 예를 들어, 내가 이걸로 파이어볼을 날리면 메테오가 된다. 그 정도로 위험하고, 엄청난 물건이었다.

    분명 탐이 나는 물건이었다. 다만 내가 저걸 쓸 정도로 강력한 상대는 없었다. 아니, 저런 걸로 마법을 때려 박으면, 농담이 아니라 세상이 망할지도 몰랐다.

    나는 에일린의 기특함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에일린이라면 몰라도 내겐 너무 위험한 물건이다.

    에일린은 내가 스태프를 받지 않자 아쉬운 얼굴을 지었지만, 본인도 내심 마음에 드는지 스태프를 쥔 손을 풀지 않았다.

    * * *

    레칸테는 특산품이랄 게 없었다. 땅을 파면 뭐라도 나오겠지만, 광부들이 일하기엔 지형이 너무 위험했다. 서식하는 몬스터들도 B급을 상회하는지라 모험가가 생활하기도 부적합했고.

    그렇다고 목공업을 하기엔 나무가 없다. 낚시를 하기엔 수지水池가 메말랐다. 레칸테의 또 다른 별명은 자연의 유배지였다. 신이 올바르지 못한 것들을 격리해둔 천연 감옥. 좋은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저주받은 땅.

    한가운데에 호수를 만들고, 숲을 만들고, 집을 지어도, 오늘 길이 그따위라면 도시의 번성은 꿈꾸기 힘들다. 땅을 전부 갈아엎지 않는 이상 사람들이 유입될 일은 무無에 가까웠다. 유진도 이 긴 길을 한 번에 엎기엔 시간이 걸렸고.

    하지만.

    정령들이 모여들며 변화가 생겼다.

    카르드라실에서 태어난 그들은 저 멀리 느껴지는 익숙하고 강렬한 기운에 숲을 떠났다. 대자연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 일은 정령들에게 크나큰 도전이었지만, 호기심 많은 정령은 대자연의 마나가 공존하는 인간의 도시에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수십, 수백, 수천마리의 정령이 에일린의 발자취를 따라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정령들의 대이주.

    바람을 타고, 흙을 깎고, 물을 뿌리며 움직인다.

    딱딱하고 경사진 언덕은 잘 다져져 부드러운 흙이 되었고, 순식간에 자라난 초목에 야생동물이 모여들었다.

    “허어…”

    하메일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빛무리에 멍청이처럼 입을 벌렸다.

    ‘…정령들의 도시인가.’

    마나가 없는 이는 정령을 볼 수 없다. 그게 상식이었다. 그런데 저것들은 대체 뭘까. 실시간으로 대지를 비옥하게 만드는 저것들은, 대체 뭐라는 말인가.

    ‘…성황청의 비밀 도시인가?’

    그는 두둥실 떠다니는 거대한 황금 정십자를 보며 침을 삼켰다.

    “이봐.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지?”

    “아, 예, 예! 죄송합니다! 도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만…”

    넋 놓는 하메일에게 일갈하는 금발의 남성.

    “…내가 바빠서 말이야. 용건만 말하고 돌아갔으면 하는군.”

    슈리엘이었다.

    그는 딸을 만나고 얼마 후, 청련단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도망치듯 저택을 빠져나왔다.

    유진과 똑 닮은 얼굴의 소녀. 손을 뻗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부터가 의문이었다. 유진이 쌓아온 업보에 자기혐오를 느끼는 것처럼, 그 또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노예 각인부터 어떻게든 풀어야 되겠어.’

    좀 더 다정하게 대해주고 싶지만, 유진은 이를 원치 않았다. 억지로 하는 건… 아니다. 본인도 즐기고 있다는 걸 자각한다. 하지만 정사 후 시체처럼 뻗는 유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심란했다.

    딸을 만나고 나서는 더 심해졌다.

    하메일은 얼굴을 찡그리고 고민하는 금발의 사내를 보며 상념에 빠졌다.

    ‘뭐지? 드루이드인가?’

    직접 만나본 영주는 드래곤도 뭣도 아닌… 뿔 달린 사슴 인간이었다. 정정해서 영주가 아닌 영주 대리인이었지만, 아무튼.

    그는 간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무인도시라 들었습니다. 아직, 이주민을 모집하고 있다고요.”

    “일자리도 넘쳐나고 말이야. 관심 있나?”

    “…이곳과 계약하고 싶습니다.”

    “계약?”

    하메일에겐 엄청난 기회였다. 아직 도시 규모가 작아 시동이 걸릴 때까지 엄청나게 걸리겠지만, 관광업이든 마법특수特需든 엄청난 인원이 몰릴 게 분명했다.

    선점해야 했다.

    “향후 오 년간 수익의 절반을 내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영주의 ‘허락’을 받고 파는 것과, ‘계약’을 하는 것과 파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당장 팔 게 없더라도, 계약한다면 다른 상단의 압박을 받지 않고 편하게 발을 늘릴 수 있다.

    인건비에 재료값을 생각하면 정말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지만, 이곳이 새로운 기회라는 건 모든 단원이 동의하는 바였다.

    “…알아서 하도록. 단, 문제를 일으키면 맨몸으로 내쫓을 테니 조심하도록.”

    “감사합니다!”

    슈리엘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계약을 허락했다. 돈을 내든 말든 상관없었다. 이곳을 소문내주기만 한다면 손해 볼 게 없었다. 자신이 관리하는 영지도 아니고, 유지 비용도 없다. 이곳에 필요한 건 머릿수였다.

    “돌아갈 건가?”

    “아, 예! 일단 이곳에서 식량을 보급한 후…”

    “이쪽에서 챙겨주지. 다만, 네가 할 게 있다.”

    “예?”

    “이주민을 데려와라. 모험가든, 거지든 상관없다. 머릿수를 채워야 향후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서 말이야. 마차는 준비해두지. 단원이 일곱이라 했나? 일곱 대를 끌고 가면 되겠군.”

    마차까지 준비해준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메일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지막 문제가 남아있었다.

    ‘…어떻게 돌아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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